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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실신
목수기의 피풍의를 빼앗긴 심균당은 뻣뻣하고 보온이 잘 되지 않는 관복을 입은 채 복도에 서 있었다.
위 공공이 있을 때는 체면 때문에 죽어라 버텼고 표정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위 공공이 사라지자 더 버티지 못하고 두 팔로 가슴을 감쌌다. 너무 추워 제자리 뛰기를 해 보기도 했다.
목수기의 피풍의를 두르고 있을 때는 그래도 몸이 점점 따뜻해졌다. 하지만 완전히 몸이 덥혀지기도 전에 위 공공은 그 피풍의를 가져가 버렸다.
피풍의를 벗자마자 얼음처럼 찬바람이 순식간에 심균당을 감쌌다.
추웠다가 더워지기를 반복하자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머리뿐 아니라 장이 꼬인 것처럼 배도 아팠다.
위 공공이 양심적으로 토시와 방한용 귀마개를 가져가지 않은 것만도 심균당에게는 감지덕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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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균당은 작은 토시로 배를 덮었다. 두 손을 토시 안으로 집어넣자 세이프게임 그나마 조금 따뜻해져 추위를 견디기가 한결 수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심균당은 다시 머리와 배가 아파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심균당은 복도 기둥을 붙잡았다. 그는 배가 너무 아파 자기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대리석 바닥이 얼음처럼 차다는 것 따위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심균당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훔치다가 깜짝 놀랐다. 이마가 뜨거운데도 식은땀이 났기 때문이었다.
‘식은땀이 나고 열이 난다면…….’
아무래도 조금 전 몸이 추웠다 더워진 탓에 병이 난 것 같았다.

심균당은 바닥에 쪼그려 앉은 다음 복도 기둥에 몸을 기댔다. 두 팔로 무릎을 감싸고 몸을 최대한 따뜻하게 하려고 애썼다.
심균당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공처럼 돌돌 말았다. 세이프파워볼
몸을 최대한 움츠린 심균당은 보통 남자보다 두 배는 작고 왜소해 보였다.
냉혹한 날씨에, 시간은 점점 길어지는 것 같았고 매 순간이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만민전.
태감이 목청을 높여 인사한 다음 대조회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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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황제가 노란색 옷을 입고 황좌에 앉았다.
대전에서 제일 높은 자리였다.
살짝 눈을 내리깔자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문무백관이 보였다.
권력의 정점에 올라와 있는 듯했다. 파워볼사이트
황제는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황제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중누각처럼, 그를 떠받쳐 주는 것이 없었던 터라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산산조각으로 부서질 것 같았다.

신하들을 바라보는 황제의 눈빛에서는 두려움이 엿보였다. 조금 기가 죽어 보이기도 했다.
반면 황좌 아래에 앉은 섭정왕은 위엄이 있고 패기가 넘쳐 보였다. 심오한 눈을 통해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신하들은 ‘만세’를 외쳤지만 실제로는 황제가 아니라 섭정왕을 바라보았다.
섭정왕은 오랫동안 권력을 잡고 부지런히 나라를 다스렸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국고를 풍족하게 했다. 파워볼게임사이트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감정적인 색채를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평가했을 때 섭정왕은 덕을 갖춘 권력자였다.
황제는 점점 나이를 먹고 있었다.
올해가 지나면 이제 곧 만 열여덟 살이 된다. 그런데도 섭정왕은 여전히 황제에게 권력을 이양하지 않고 있었다.
권력 이양에 시간을 끄는 목적은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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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을 장악해 자신이 일인자가 되고 싶은 것이었다.
문무백관들은 매달 열리는 대조회를 철저히 준비했다.
섭정왕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보고하는 관리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 처음 보고하는 관리는 이부상서(吏部尙書)였다. 파워볼실시간
이부상서는 국가의 재정을 담당했으므로 보고할 내용도 제일 많았다. 이부상서는 매달 초하루를 제일 싫어했다.
이부상서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와 예를 올리려고 했다. 윗자리에는 젊은 황제와 섭정왕이 앉아 있어서 이부상서는 누구한테 예를 올려야 할지 몰랐다.
이부상서는 섭정왕의 동태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보고하기 시작했다.
보통 이부상서가 절반쯤 보고했을 때 섭정왕은 보고를 중단시켰다. 그러고 나서는 이부상서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들을 퍼부어 대곤 했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거의 보고가 끝나 가는데도 섭정왕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순조롭게 보고를 마친 이부상서는 지금 상황이 조금 믿기지 않았다.
이부상서는 보고서의 끝부분을 읽어 가면서 섭정왕을 살짝 훔쳐보았다.
그때 이부상서는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섭정왕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넓고 큰 의자에 앉은 섭정왕은 딴생각에 빠진 듯했다.
이부상서는 자기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할 일을 마친 위 공공은 조심스럽게 섭정왕에 다가간 다음 허리를 굽혀 귓속말했다.
“전하, 명하신 일을 끝냈습니다.”
섭정왕은 멈칫했다가 위 공공에게 오른손을 들었다. 위 공공은 즉시 뒤로 두 걸음 물러나 병풍처럼 배경으로 녹아들었다.
‘눈에 거슬리는 피풍의를 벗겨 냈으니 젖비린내 나는 새끼 늑대가 눈보라 속에서 꽁꽁 얼겠군. 철없는 녀석, 한번 호되게 당해 봐야 정신 차리겠지!’ 섭정왕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이부상서가 말했다.
“전하, 보고를 마쳤습니다.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이부상서는 쩔쩔매며 대전 양탄자에 쓰러질 것처럼 허리를 굽혔다.
섭정왕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없이 이부상서를 내려다보았다.
위 공공이 보고한 후 섭정왕의 머릿속은 심균당이 차지해 버린 탓에 이부상서가 한 말은 한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섭정왕은 당연히 물어볼 것도 없었다.
섭정왕은 다음 사람이 보고하라는 의미로 손을 휘휘 저었다.

이부상서는 너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고 표정 관리도 제대로 못할 뻔했다. 이부상서를 오랜 시간 맡아 왔지만 보고 후 섭정왕이 질문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부상서는 섭정왕에게 질문하지 않은 이유를 감히 물을 수 없어 옆에 있는 동료를 쳐다보았다. 동료가 눈짓하는 걸 보고 이부상서는 자기 예상대로 섭정왕이 물러가라고 한 것이 맞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부상서는 잽싸게 뒤로 물러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남들이 보지 않을 때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훔쳤다.
섭정왕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자 조정에서 오랫동안 눈칫밥을 먹었던 이부상서도 몹시 당혹스러워 진땀을 뺐다.
다른 문무백관들도 섭정왕이 오늘따라 이상하다는 낌새를 눈치챘다.
이에 그들은 더욱 경계심을 곤두세우고 몸가짐을 삼갔다. 섭정왕이 어느 순간 평소처럼 돌변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섭정왕의 마음은 이미 만민전 밖 복도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심균당에게 가 있었다.
섭정왕은 만민전의 거대한 문을 바라보았다. 겨울철 대조회 때는 추위를 막기 위해 문을 굳게 닫았다.
섭정왕이 신하들을 위해 몇 년 전에 특별히 명한 것이었다.
그는 그런 규정을 만든 게 후회스러웠다.
문이 열려 있었으면 밖에 있는 심균당이 보였을 것이다. 섭정왕은 그가 어떻게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눈도 많이 내리고 추운 날이었다.
‘피풍의를 입지 않고 찬바람을 쐰다고 팔다리에 동상이 걸리진 않을 테지.’ 섭정왕은 대조회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섭정왕은 최대한 상세하게 보고하는 각 부서의 상서들에게 짜증이 났다.
‘말이 너무 많아.’
그는 머릿속에 그들의 이름을 단단히 새겨 두었다.
섭정왕은 대조회를 질질 끄는 것으로 악명이 자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파격적으로 보고를 짧게 하는 관리를 칭찬했다.
“예부의 보고는 높이 살 만하구나. 간결하고 명확해서 시간을 아껴 주었으니 상을 내리겠다!” 예부는 이번 대조회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부서가 되었다.
예부상서는 3개월 전에 부임한 신참이었다. 지방에서 온 탓에 연경성에는 특별한 연고가 없었고 대조회도 지금까지 두 번 참석했을 뿐이었다. 그 두 번도 섭정왕한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기 때문에 예부상서는 오늘 보고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예부상서는 어젯밤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섭정왕한테서 칭찬을 들을 거라고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그동안 욕을 많이 먹은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군!’ 앞서 보고했던 다른 관리들은 어리둥절했다.
‘섭정왕의 성정이 바뀐 건가? 간단명료한 보고를 좋아한다고? 그전까지는 사소한 것까지 꼬치꼬치 따지고 들었잖아!’ 관리들은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다음 대조회 때는 대체 어떻게 보고해야 하는 거야?’ 문무백관들 사이에 서 있던 목수기는 섭정왕을 올려다보았다.

때마침 그는 섭정왕의 가늘고 긴 눈과 마주쳤다.
순간 두 사람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결국 목수기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오늘처럼 섭정왕이 목수기를 주목했던 적은 없었다.
고개를 숙인 목수기의 표정이 굳었다.
섭정왕은 목수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영흥후와 영흥후부에 관심을 많이 갖는 것 같았다.
목수기가 꼬리를 내리자 섭정왕도 시선을 옮겼다.
가문에 면사금패가 있다 해도 목수기는 일개 어사에 불과했다. 섭정왕과 대립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했다.
목수기가 심균당과 가깝게 지낸다면 섭정왕이 그를 가볍게 보지 않을 것이다.
오늘 대조회에서 섭정왕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관리들은 원인이 무엇일까를 두고 다방면으로 추측하기에 바빴다. 당연히 대조회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관리들은 딴생각에 빠져들었다.
대조회에 가장 진지한 관심을 보인 사람은 권력이 없는 황제였다.

겁먹은 듯 연기를 하고 있었지만 황제의 마음에는 야심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황제는 속마음을 감춘 채 신하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자세히 살펴보고 머릿속에 담아 두었다.
황제의 황숙, 섭정왕은 조정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딴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섭정왕은 어떻게 하면 대조회를 빨리 끝내고 마음에 걸리는 일을 해결할지만 골몰했다.
면류관에 달린 술 때문에 황제의 얼굴은 모호하게 변했고 표정도 모호해져 분간이 어려웠다.
섭정왕의 격려 덕분에 올해의 마지막 대조회는 평소보다 한 시진이나 일찍 끝이 났다.
태감들이 만민전의 육중한 문을 열자 문무백관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원래대로라면 한 해의 마지막 대조회는 평소보다 늦게 끝나야 했다.
또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총결산도 해야 했고 이듬해에 무슨 일을 할지에 대한 계획도 수립해야 했다.

게다가 새해를 맞을 때 황궁에서 개최하는 연회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했다.
논의할 게 많았음에도 대조회가 예정보다 훨씬 빨리 끝난 것이다.
눈이 내리지 않았다면 문무백관들은 대전을 나가 해가 서쪽에서 뜨지 않았는지 확인해 보았을 것이다.
일부 늙은 신하들은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몇 명씩 따로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예전 같으면 대조회를 마친다고 선포하자마자 모두 토끼보다 빨리 뛰쳐나갔을 것이다.
일부는 급히 관아로 돌아가 점심을 먹으려 했고 또 일부는 참았던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측간으로 달려갔다.
이번에 목수기는 그들과 달리 조회가 끝나자마자 심균당이 걱정되어 재빠르게 움직였다.
대조회가 일찍 끝나긴 했지만 시작한 후 거의 두 시진이 지나 있었다.
심균당은 허약한 체질이라 밖에서 두 시진 동안 찬바람을 맞았다면 쓰러졌을 수도 있었다.
목수기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관리들 사이에서 대조회가 일찍 끝난 것을 놓고 의견이 분분할 때 섭정왕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때는 아무도 섭정왕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 역시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전에는 대조회가 끝난 후 몇몇 각로들이 섭정왕을 쫓아가 대조회 때 나온 안건을 놓고 말씨름을 벌였다.
이번에는 대조회가 갑작스럽게 일찍 끝나 각로들은 미처 대응할 여유가 없었다.
각로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섭정왕이 자리를 비운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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